싸돌아 다닌 이바구들

진주성 촉석루와 의암,국립 진주박물관 이야기..한국관광클럽 진주투어 동행기A

이혁주기자 2012. 2. 20. 16:00

 

 

                        진주[晋州 Jin ju]

 

 

면적은 712.86㎢  1995년 진양군과 통합시를이루었으며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도시로 1읍(문산읍)

15개 면 21개 동으로 이루어져있다. 동쪽은 함안군 마산시,서쪽은 하동군,남쪽은 사천시 고성군,

북쪽은 산청과 의령군에 접한다.경남의 동맥을 이루는 남강이 진양호를 이룬뒤 진주시를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된다.

 

변진의 소국인 고순시국으로 나중에 일시 백제의 영토가되었으나,삼국통일을 거쳐 고려 성종2년

진주목이되었다.조선시대에는 진주를 진강,청주,진산으로 불렸으며 1592년 임진왜란때에 제1차

진주성전투를통해임란3대첩중하나인 "진주대첩"을 거두게되며 이듬해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7만의 관민이 전몰하며 왜군에 함락된 아품이있다.

 

1896년 고종때 전국을 13도로 개편할때 경남에 속해졌고 도청소재지가됐다.1925년

경상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되었다.1949년 8월15일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진주시로

개칭되어 시장을두게됐고진양군을 통합하여 지금의 진주시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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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흥휴계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한국관광클럽에서 진주시와 MOU를 체결한다고 하기에 예정시간보다 10분늦은 7시40분 덕수궁앞에서 버스에올라

그동안 함께투어하며 얼굴을 익힌분들과 방가운인사를 나눈다.기흥휴계소에 정차하면서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기에 모두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를 해장국과 비빔밥으로 통일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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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에 진주시와 MOU를 체결하고 잠을잘 남강변의 동방호텔이 멀리보인다.

 

      - 진주라 천리길- 최숙자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가 촉석루에 달빛만 나무기둥을 얼싸안고 아- 타향살이 내 심사를 위로할 줄 모르느냐
          진주라 천리길을 내어이 왔던가 남강가에 외로이 피리소리를 들을적에 아~ 모래알을 만지면서 옛 노래를 불러본다

       

       

       위의 노래가사에서 볼수있듯이 진주는 천리길이다.멀다..인삼랜드 휴계소에 한번을 더 정차했는데도

      다섯시간이 채안걸려 진주에 도착했다.정말 좋은세상이다.아침먹고 서울떠나 점심때 진주에 도착을하다니..

      저녁에 묵을 동방호텔이 건너보이는 본토비빔밥에서 전주비빔밥이 아닌 진주비빔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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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상차림과 별도로 준비해준 가오리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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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비빔밥은 칠보화반이라하며 둥근 놋그릇에 힌빛의 밥테,다섯가지나물이 어우러져 7가지색상의 꽃모양의

      비빔밥을 만드는게 이곳 진주비빔밥이다.전통음식으로써 무쇠솥에 장작불로 밥을짓고 나물을 무치고 육회를

      가늘게 썰어 참기름을 더 한다.국은 선지국을 만들고 바지락을 이용해 보탕국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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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CNN이 꼭 가보라고 한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 공북문

       

                              진주성(晋州城)

       

        

      사적 제118호인 진주성은 둘레가 1.7Km이고 1592년 제1차 진주대첩과 7만의 민관이 전몰한 2차 진주성전투의

      배경무대이다.임진왜란대 전투지휘소로사용한 촉석루,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떨어진 의암과 의기사. 전몰한

      호국선열들을모신 창렬사와 호국사가있고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동상과 전공비,국립진주박물관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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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김시민장군상앞에서 간단한 기념촬영..본기자는 사진에 없다.이 사진을 찍느라고..

       

      충무공하면 누구든 이순신장군을 떠올린다.워낙 유명하신분이라서일까??충무공은 시호이다.사전을 찾아보면

      나라에 무공을 세워 죽은후 忠武라는 시호를 받은분을 높여 이르는말이라고 써있다.충무공하면 떠오르는 이순신

      장군을 필두로 김시민장군,남이장군,정충신장군,조영무,왕족인 이 준,이수일,구인후,김응하..이렇게 모두

      9명의 충무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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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김시민장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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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미루였다가 고종32년 진주관찰사 청사관문으로 영남포정사라 했다.전 경남도청의 정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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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지자,현자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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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민장군 전공비                                                 ▲촉석정충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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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만 민,관,군의 충혼을 위령하기위해 1987년 건립된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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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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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가에 돌이 우뚝 솟아있다해서 붙여진 이름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이며,영남제일의 명승이다.전시에는

      지휘소로,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곳이다.고려고종때 김지대 진주목사가 창건한이후 7차에 걸쳐

      중건,중수를 했다.경남 문화재자료 제8호..평양 부벽루와  진주 촉석루라고 불리울정도로 명승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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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석루가 남장대로도 불리우는 이유는 이 현판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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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석루에서 본 남강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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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랑 논개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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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기사로 드는 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호인 의기사는 임진왜란당시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껴안고 남강에투신하여 순절한

      논개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다.영조16년 경상우병사인 남덕하가 창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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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기사와 논개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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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 의암쪽에서 보이는 축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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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의 충절이 담긴 역사의 현장인 의암(義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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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충각은 임란시에 의병을 모아싸운 제말장군과 조카 제홍록의 공을 기리어 정조가 세운 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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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각에 있는 쌍가락지형상물은 논개가 깍지를끼고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투신한걸 뜻한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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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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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까지 무전여행을 하는중인가본데,시간이 왠수?인터뷰를 못땄다.많은사연이 있어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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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성의 중심부에 위치한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성이 가진 역사성을 부각하기위해 임진왜란전문

      역사테마박물관으로 운영하고있다.1,2층은 상설전시관이고,별관으로 두암실과 기획전시실이있다.

      1층전시실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문학,서화,음악등 전반에걸친 유물들을 전시하고있고,2층은

      일본의 침략준비,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이담긴 석담일기 은봉전서등을 전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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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차는 총통기나,신기전중 하나를 올려놓고 사용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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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홀 중앙에있는 가장 눈에띠는 TOMORROW(육근병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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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전시실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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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부순절도                                               ▲부산진순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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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전                                           ▲옥로,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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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배                                                   ▲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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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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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서원(배틀과 물레를보급한 문익점의 장인인 정천익을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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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4호인 북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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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다리

       

      아주아주 먼 옛날..때는 고려초 진주의 한 마을 군수이씨에게 딸 셋이 있었다.그중 둘쩨딸이 출가하자마자

      남편이죽어 친정집에 살게된다.군수집 머슴인 돌쇠는 아씨를 사모하게되고,아씨또한 성실하고 충직한 돌쇠에게

      마음이 끌렸지만 신분상의 차이로 둘의 사랑은 이룰수없는 짝사랑으로 이어졌다.그러다 아씨는 상사병으로

      죽게됐고..돌쇠는 아씨를 장사지내려가는도중 용다리위에서 무심결에 도랑물을 보게돼는데 그물에 비쳐진

      자신의모습이 죽은아씨로 보여"아씨"하고 소리치다 실성을한다(미쳤다는말) 딸을 잃은군수는 이고장을 떠나려고

      용다리를 건너가고있는데 뒤따르던 돌쇠가 보이지않아 찾으니,이미 돌쇠는 돌다리옆 고목에 목을맨뒤였다.

      그때..조용하던 용다리밑 개천에 수천마리나될듯한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리기시작하는데 마치 죽은돌쇠가

      우는것처럼 들렸다고한다.짝을지은 남녀나 부부가 지나가면 개구리들 울음이 그치고,상사병에걸린사람이 다리를

      두번왕복하면 상사병이 씻은듯이 나았다고한다.6.25전까지 돌쇠가 죽은고목에 아들을 원하는사람들은 한식에

       제사를 지냈다하며 지금은 용다리 흔적만이 진주성안에 남아있다.

       

         *용다리의 슬픈전설로 마무리 하고 비공개중인 익룡발자국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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