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돌아 다닌 이바구들

[스크랩] [경기/개성] 포은의 충절을 기리는 문충당, 숭양서원

이혁주기자 2008. 11. 4. 14:48

 

 

포은의 집터에 세워진 문충당,

숭양서원

개성시 선죽동

 

숭양서원 전경

 

양서원(崧陽書院)은

포은 정몽주(鄭夢周)를 제향하기 위해 포은의 집터에 세워?습니다.

선조6년(1573년) 개성유수 남응운이 유림들과 함께 정몽주의 충절과 서경덕(徐敬德)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위패를 모시고

정몽주의 집터에 문충당(文忠堂)이란 이름으로 세워졌으며,

이후 문충당은 국가공인 서원으로 '숭양'이란 사액을 받게 됩니다.

현종9년(1668년)에는 김상헌(金尙憲)을, 숙종7년(1681년)에 김육(金堉), 조익(趙翼)을 정조8년(1784년)에 우현보(禹玄寶)를 추가로 배향하게 되어 선현을 봉사하고 지방교육을 담당하던 곳입니다.

고종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서원중 한곳입니다.

 

원이 사당은 정면4칸 측면 2칸의 겹처마와 맞배지붕이며, 강당은 정면5칸 측면3칸으로 홑처마와 합각지붕입니다.

동재와 서재는 정면5칸 측면2칸으로 맞배집입니다.

전학후묘의 사설서원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언덕진 지형에 사당이 가장 높은곳에 강당이 그 아래에 자리잡은 형태로 섭니다.

 

통의 주차장에 들러서서는 굳게 문이 닫히거나 제한된 공간속에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개성여행중 유일하게 북한의 거리를 그대로 느낄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북한의 거리나 사람을 촬영할 수 없기에 그 모습은 마음에만 담았습니다. 

4차선 시멘트 도로를 두고 저희가 있는 쪽은 사램의 왕래가 없으나 건너편으로는 제법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문득, 쳐다보는 이들은 손을 흔들어 주기도, 그저 갈길 바쁜 어른들도 복장은 다 비슷합니다.

어린꼬마의 모습,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볍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는 꼬마의 모습에 순간, 반가움 보다는 원망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애써 담담한척 하며 버스에 오르고

버스가 선죽교를 향하는 동안에도 꼬마의 모습은 계속 이동중인 버스를 향하고 있습니다.

 

볍지 않은 무거운 짐을 진듯한 기분,

개성여행의 추억은 관광지가 아니고 사람의 기억이었습니다. 역사가 아닌 비뚤삐뚤 지어진 개성시내의 건물들이었습니다.

출절의 정몽주가 아니고 길가에 서던 그 꼬마였습니다.

 

 

  

 

 

 

  

 

  

 

 

 

 

 

 

 

 

출처 : 길손의 旅行自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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